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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눈을 뜬세상은 어떨까. 과거 상상하던 한편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겁이 나 오래 살기를 바랐던 거 같은데. 그 바람이 무색하게도 나는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렇게 무서워했던 물에 빠져 죽었던가. 생전에도 좋아하지 않던 바다에 놀러가 아무도 모르게 가라앉아 숨이 멎었다. 차가운 것을 좋아했는데, 깊게 물에 잠길수록 몸에 감기는 차가운 물이 너무 무서웠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지금은 저승사자지만.’

 

그러고 보면 막 숨이 끊기기 직전에 누군가를 봤다. 위에서 내려오는 게 아닌 밑에서 올라와 잠시 감싸 안아준 거 같은데. 살짝 뜬 눈으로 본 마지막 기억은 하늘색 머리카락과 노란 눈. 너무 깊은 물속이라 그런지 자세히 보지 못한 게 무척 아쉽지만. 이젠 흐릿한 과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죽은 그 날을 기점으로 이제 40년인가. 누군지 찾고 싶어도 시간이 많이 흘러 알아볼 수도 없을 테고. 죽은 그 사람을 내가 안내하러 찾아간다면 모를까.

 

-

 

죽은 혼이 저승사자가 되는 길은 생전에 인덕도, 죄도 짓지 않고 악귀가 씌지 않은 영혼이 세상에 미련을 가졌을 경우에만 자격이 충족된다. 그래서인지, 앞의 사항은 무척 적은 저승사자 수의 이유가 된다. 인덕이든 죄든 인간은 무언가 하나를 대부분이 지니고 있었고, 그 마저도 없던 인간은 죽어서 남은 미련이 없었다. 여기 모인 우리는 특이 케이스라는 건가.

 

“죽어서도 일하는 건 조금 억울한데.”

 

이제 막 육체와 분리된 혼을 안내하러 가는 길이 무척 고단하게 느껴진다. 신은 움직이기 싫은 발을 허공에 올려 길게 늘어진 길을 따라 걸어갔다. 천천히 걸어가면 양 옆에 길게 세워진 빌딩 안에서 인간들이 바삐 움직인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지루해 밑을 바라보면 빌딩 내부에 서 있는 인간들보다 몇 배는 많은 인원이 거리에 가득하다. 예전에는 나도 저 속에 있었을 텐데. 감흥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신의 시선이 이내 앞을 향했다. 대강 이 근처인데.

 

‘이번에는 제발 순한 사람이 죽었으면 좋으련만.’

 

혼은 생전의 인격과 기억, 인성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난폭한 사람일수록 죽음을 받아드리도록 유도하고, 인도하기 힘들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은 이내 훌훌 털고 함께 가지만 그중에도 사람 차이가 있다. 젊은 인간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텐데. 지금 눈앞에서 헤매는 영혼은 어린 9살. 이건 나름 괜찮은 처사인가.

 

“언니는 누구야? 친구들은? 엄마랑 아빠는? 나 추워.”

“아가의 엄마가 있는 곳을 알아. 같이 가는 건 어때?”

“싫어! 우리 엄마 어디 있어? 엄마!”

 

검은 옷을 두르고 온 게 문제인가. 아이는 신을 보더니 대뜸 주변인을 찾으며 울먹였다. 괜찮은 처사는 무슨. 거기다 계절이 겨울이라 눈이 내리고 있지만 이 아이는 죽었는데. 죽은 혼이 어찌 주변이 차고 더운 걸 느낀단 말인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한숨을 푹 쉬는 신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한참을 달래며 손을 잡고, 입이 아프도록 미소를 보여줘야 아이는 이내 길을 함께 했다. 가는 길에 계속 훌쩍이는 소리는 이제 덤덤하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사자 생활이 익숙해졌다. 옛날이라면 듣기 싫어서 소리 한번은 질렀을 텐데. 세간에 존재하는 그 무엇 중 시간이 가장 무서운 매체일 것이다. 그 무서운 시간 축에 조금 전 죽은 이 아이도, 자신도 벗어나 있는 건가. 신은 다시 한 번 밑을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저들도 시간이 지나면 죽고, 다시 태어나길 순환할 텐데. 지금 열심히 살아서 의미가 있나. 그건 지금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언니, 언니 밑에 봐! 바다야!”

 

한참을 걷자 발밑에 바다가 펼쳐졌다. 수십 년이 지나면서 탁해지고, 마지막 생전 기억이 바다와 밀접한 만큼 반갑지 않았지만 옆의 아이는 신이 났는지 내려가고 싶어 신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낯익은 모래사장이 보이자 흠칫 놀라지만 아이가 만들어진 길을 이탈하는 바람에 꽁무니 쫓기 바빴다. 예전에는 겨울 바다를 보러 오는 인간도 여럿 있지 않았나. 오늘은 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고, 고요하다. 뛰어다니는 아이 외에는 한적한 바다는 잔잔하게 파도만 칠뿐이었다.

 

아니. 시야의 구석진 곳에 인기척이 있는 거 같은데. 그저 인기척이라면 무시할 테지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 이상했다. 저승사자와 죽은 영혼. 이런 존재를 인간이 바라본다? 그게 가능할 리가. 신은 의문을 품고 인기척이 드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겨울에 차가운 바다에 들어갈 인간이 있나?’

 

미치지 않고서야 없겠다만. 예외라는 건 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바다로 향할수록 손이 떨려왔다. 숨이 막힐 정도로 발끝에서 무언가 옭아매는 기분이 들어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한발을 내밀어도 이상한 기시감이 들어 주저앉게 된다. 어쩐지 익숙하더니.

 

‘숨이 끊긴 장소가 여기였나보네.’

 

모래사장 거의 끝자락. 옆에는 작은 노점이 있고, 얕은 쪽에는 바위가 여럿 솟아나 있는 여기다. 썩 유쾌한 장소는 아닌데. 딱히 나쁜 기억이라며 묻어둔적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힌 장소가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구해 준 사람.

 

회상을 짧게 마치고 바위 뒤에 숨은 사람을 보기 위해 공중으로 발돋움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숨는다면 정면으로 보긴 어려울 테니까. 잠시 잊은 아이가 생각나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주우려는 지 눈을 모래사장에 고정한 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죽은 사람은 무엇도 만질 수 없을 텐데. 복잡한 눈을 거두고 바위 뒤로 돌아 숨은 인영을 마주했다.

 

“푸른 머리카락, 노란 눈. 그리고

“.......”

 

그리고, 사람이 아니야. 처음 만난 존재에 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몸에 비늘? 귀도 달라. 생전에 읽었던 책에 나온 인어와 모습이 흡사했다. 그건 그냥 동화책이 아니었나? 허구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존재는 지금 나와 다를 바가 인어도 존재할 수 있나. 차분해진 검은 눈이 푸른 인어에게 고정되었다. 그보다, 볼 수 있구나. 저승이나 천계가 아닌 계에서 누군가가 의식하고 바라보는 게 무척 신기했다.

 

“당신, 사람이 아니죠?”

“.........”

“안 들리나요?”

“........”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엔 민망해서 던진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며 대답했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 불쾌한 듯 표정을 찡그리자 그제야 앞의 인어가 입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입은 움직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아. 말을 못하는 건가? 확실한 입모양을 보기 위해 바다 위에 서서 다가가자 그가 먼저 가까이서 신의 손을 잡았다.

 

잡은 손의 손바닥에 또박또박하게 적은 건 ‘청설’ 이름이냐 묻자 앞의 남자가 끄덕인다.

 

“저희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

‘네. 있어요.’

“언제요? 기억이 희미해요. 그 때 뒤에 있던 사람이 당신 맞아요?”

 

옅게 미소 지으며 끄덕이는 대답에 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인간이라 생각하고 이미 없거나 이야기를 나눌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어는 수명이 얼마나 길지? 적어도, 지금 그는 40년 이상을 살았을 텐데. 인간과 인어의 시간축이 다르게 흘러갈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청설의 얼굴을 잘 뜯어봐도 20대.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별히 주고 받는 대화 없이 바라만 보자니 한 쪽에서 조개를 주우러 다니던 아이가 생각났다.

 

고개를 들어 아이 쪽을 바라보자 모래 더미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아마 모래도, 조개도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어 울고 있겠지. 청설과 아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자 청설이 다시 손을 잡아 문자를 적었다.

 

‘나는 늘 여기 있으니까 다녀오세요.’

 

마지막까지 다 적자 그는 아이 쪽을 가리켰다. 그가 구해준 것도 아니라 감사 인사를 하기도, 다른 전할 말도 없던 신은 그런 그의 제안을 수락하며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다시 오겠다는 인사만 남긴 채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아쉽지만 청설은 다음에 만나면 생전의, 죽기 직전의 신에게 전한 마지막 말을 다시 한 번 알려주겠다. 생각하며 모습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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