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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 / 노래의 왕자님

​히지리카와 마사토×쿠죠 카자네

최근, 히지리카와 마사토는 소꿉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전에도 이런 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심 귀찮아서 내버려두던 때와는 달리, 이제 카자네는 단순한 소꿉친구가 아니었다.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누군가의 꾐에 빠지진 않았는지 마사토는 걱정이 되었다. 어쩌다 마주쳐도 자신을 피하기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건 분명했다.

“응? 히지리카와잖아.”

누구라도 붙잡고 카자네에 대해 물어보자고 생각하던 중, 마침 진구지 가의 렌이 말을 걸어왔다. 분하지만 그가 카자네의 가장 친한 친구이긴 했고, 지금은 도움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진구지, 카자네가 뭘 하는지 아나?”

“카자네? 아하, 그렇군. 요즘 그 애가 널 피해다녔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다급하게 묻자, 렌은 여유롭게 웃었다.

“모르는 건 너뿐일걸. 카자네는 이대로 네가 모르길 바라겠지만.”

“그게 무슨 소리지? 역시 누군가 그 애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면…”

“이봐, 진정해.”

자칫 혼자만의 세계로 빠질 뻔한 마사토의 어깨를 렌이 두드렸다. 카자네에 대해 마사토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데 어지간히 놀란 것 같았다.

“으, 으음. 나답지 않게 당황했나. 그래도 카자네 일인데 가만히 있을 수는…”

“그러니까 진정하라는 거야.”

급기야 렌은 한숨까지 쉬며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을 해 봐. 최근에 카자네랑 자주 같이 있던 게 누구인지.”

“…나나미 하루카, 인가.”

“그래. 새끼양과 함께인데 나쁜 데로 빠질 리가 있겠어? 넌 카자네를 좀 믿어야 해.”

“나는…”

충분히 믿고 있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로 카자네를 완전히 믿고 있는지 마사토는 의문이 들었다. 이전에 카자네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한 건, 전적으로 믿어서가 아니라 소꿉친구를 줄곧 어린애 취급하고 있어서였다. 그 소꿉친구가 연인이 된 지금은 또다른 형태로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있었다. 카자네 역시도 성장을 했다는 걸 마사토는 더 제대로 깨달아야 했다.

“그런데… 내가 모르길 바란다는 건 무슨 말이지?”

“이번엔 그쪽이냐. 뭐, 금방 알게 될 거야. 말 그대로라고만 답해두지.”

렌은 어떤 대답도 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카자네를 친동생처럼 여겨 아끼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 이상은 너무 힌트를 주게 될 것 같고, 알아서 생각해봐. 난 간다.”

멋대로 말을 남겨두고 떠나는 렌을 마사토도 굳이 붙잡지 않았다. 카자네에 관해 렌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금방 알게 될 것이라 했으니, 연인의 속내를 아는 건 정말로 금방일 터였다.

 

그리고 정답을 알 기회는 생각보다도 빨리 찾아왔다. 겨우 몇 시간이 지났을까, 복도를 걷고 있던 마사토는 카자네의 것이 분명한 목소리를 들었다. 평소의 활기찬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작게 소근거리는 소리였지만, 확실히 카자네였다.

“이, 이거 흘러넘칠 것 같은데.”

“카자네 쨩, 거기 조심…”

“앗, 뜨거워!”

“카자네!”

목소리가 들려온 조리실로 향하던 중, 연인의 비명을 듣고 마사토는 망설임없이 문을 열었다. 안쪽에는 여기저기에 뭔가를 잔뜩 묻힌 카자네와 하루카가 있었다. 둘은 갑자기 나타난 마사토를 화들짝 놀란 얼굴로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먼저 정신을 차린 카자네가 들고 있던 것들을 전부 탁자에 내려놓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마, 마사토는 안 돼! 출입 금지!”

“카자네? 그게 무슨…”

강제로 떠밀려 쫓겨나는 와중에 급하게 물었지만, 돌아온 건 문이 닫히는 소리뿐이었다.

‘피…?’

허탈한 마음을 달랠 새도 없이 마사토는 생각에 잠겼다. 카자네와 하루카는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의 무언가를 여기저기에 묻히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굳은 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문을 열자마자 풍겨온 달콤한 냄새를 설명할 수 없었다.

“초콜릿, 인가. 왜 초콜릿을…”

두 사람이 초콜릿 범벅을 하고 있던 이유를 생각하던 중, 마사토는 겨우 다음날이 발렌타인임을 깨달았다. 카자네가 하루카를 자주 찾아간 건 초콜릿을 만드는 데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고, 직접 만드는 것을 비밀로 하기 위해 며칠간 자신을 피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카자네…”

발렌타인 초콜릿을 만든다고만 해도 기쁠 텐데, 몰래 일을 진행할 생각까지 하다니. 새삼 마사토는 카자네가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그리고 안도감과 동시에 미안함이 몰려왔다. 단순히 귀여운 계획 때문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자신은 그런 연인을 제대로 믿어주지 못했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사과하고 싶었으나 마사토는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카자네는 다음날이면 초콜릿을 전하러 올 터였다.

 

“마사토!”

예상대로, 다음날 카자네가 먼저 마사토를 불러냈다. 카자네는 언제나 그랬듯 반가운 듯한 얼굴로 달려오려다, 손에 있는 뭔가를 깨닫곤 종종걸음을 걷다시피 빠르게 다가왔다.

“어제 들켰을지도 모르지만… 자, 발렌타인 초콜릿! 직접 만든 거야. 만들면서 먹어봤을 땐 맛있었는데, 맛 없어도 억지로 먹으면 안 돼!”

태양같은 미소와 함께 상자를 건네는 연인에게서 마사토는 초콜릿을 넘겨받았다. 상자는 끈으로 묶여 있어 열어볼 수 없었으나, 큰 초콜릿 하나가 아니라 작게 여러 개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고맙다, 카자네. 소중히 두고 먹을 때마다 널 생각하겠어.”

“마사토도 참. 나도 마사토 생각하면서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그래주면 기쁠 거야.”

“카자네.”

이름을 부르자, 카자네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들어줘, 카자네. 사실 나는… 나는, 너를 완전히 믿지 못했어. 네가 며칠새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 나를 피했을 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까지 했어. 연인인데도, 너를…”

“마사토.”

쏟아져나오던 말을 카자네가 끊었다. 혼내듯 불러놓고서, 연인은 다시 사랑스럽게 웃었다.

“그건 의심이 아니라 걱정이야. 맞지? 고마워, 걱정해줘서. 마사토를 피해다녀서 미안해. 몰래 초콜릿 만들어서 주려고 한 거니까 용서해줘, 응?”

“아니, 미안해할 건 네가 아니야. 걱정이라고 해도 나는 또다시 너를 다른 방식으로 어린애 취급하고 말았어. 사과해야 하는 건 나다.”

똑바로 바라보며 사과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마사토는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런 그의 손에 작은 손이 둘 겹쳐졌다. 놀라 눈을 크게 뜨자, 늘 자신을 지탱해주던 미소가 앞에 있었다.

“나도 마사토를 불안하게 만든 건 사과할래. 그리고 마사토가 나한테 미안해하는 마음은 어떤 건지 알겠어. 마사토는 그냥 날 믿고, 너무 많이 걱정하지 않으면 돼. 난 언제까지나 마사토 곁에 있을 거니까.”

포개진 두 손이 따스했다. 카자네의 미소와도 같았다. 마사토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래, 넌 항상 곁에 있어줬지. 그것만큼은 의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카자네, 네가 나를 믿어준 만큼 나 역시 너를 믿겠어. 연인을 믿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응, 그거면 됐어. 고마워, 마사토.”

“고맙다는 말도 내가 해야 하는군. 다시 한 번… 초콜릿, 고맙다. 네가 날 생각하며 만들어줬으니, 그만큼의 마음이 담겨 있겠지.”

다정하게 연인을 바라보자, 카자네는 곤란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한 건데 조금 부끄러운걸. 마사토 건 제대로 마사토를 생각하면서 만들었지만, 다른 사람들 것도 만들었고. 앗, 그것도 돌리러 가야 하는데! 하루카 쨩이랑 같이 여기저기 돌리러 다니기로 했으니까 다녀올게.”

올곧은 시선에, 마사토는 안심했다. 카자네는 이렇게나 자신을 믿어주고, 믿어달라고 하고 있었다. 그에 답하기 위해 마사토도 시선을 똑바로, 연인에게로 향했다.

“다녀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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