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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슙 / 하이큐-!!

아카아시 케이지×야나기 노아 ​

키스의 맛은 라즈베리.

 

“노아. 죄송하지만 잠깐만, 기다려주래요?”

 

정중한 부탁의 말에 야나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대답에 안심했는지 아카아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야나기는 시계탑 아래의 밴치에 앉았다. 봄으로 넘어가려는 듯 조금씩 따뜻해지는 날씨에 간만에 데이트를 나온 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아카아시는 부모님의 허락 하에 야나기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야나기가 다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 고교시절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풀 듯 아카아시는 시간이 있다면 언제나 야나기를 만나러 서쪽 건물까지 찾아왔다. 거의 매일을 붙어서 깨를 쏟아내는 덕에 학교에서 둘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것 대해 불만이 있다거나 귀찮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만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가 갈수록 어리고 예쁜 신입생들이 들어왔고, 본인만 모르는 학교 인기남인 아카아시에게 꼬리를 치는 것을 보느니 이렇게 대놓고 사귄다고 광고하는 게 나았다. 후후, 잠시 떠오른 옛날 생각에 야나기는 웃음을 지었다.

 

“…….”

 

잠시 휴대폰을 보고 있자니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드니 뛰어온 듯 뺨이 발그레하게 물든 아카아시가 보였다. 품에는 갈색종이봉투가 안겨있었다.

 

“뭘 사왔어요?”

 

복숭아 빛으로 물든 뺨을 두 손으로 감싸 녹여주며 물으니 아카아시는 야나기 한정으로 보여주는 웃음을 지으며 비밀이라 말했다. 흐응- 뭔지 몰라도 케이지가 다량으로 뭘 사는 건 처음이네요. 따라 웃어주며 야나기는 톡톡 뺨을 두드렸다. 

 

“얼굴 많이 빨게요. 따뜻한 곳에 들어갈래요?”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사온 짐을 부엌에 내려두고 야나기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착용했던 손목시계와 목걸이를 빼 나무로 만든 정리함에 넣었다. 그런 야나기를 보며 아카아시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저녁은 뭐 먹을래요?”

“규동 어떠세요?”

 

음… 재료가… 양파 있고, 소고기 있고, 달걀도 있고… 재료는 다 있네요.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온 야나기가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확인했다. 그 날 그날 먹을 것만 사두는 터라 종종 냉장고가 비는 경우가 있어 식사를 준비하기 30분 전에는 꼭 냉장고를 확인하는 게 야나기의 버릇이 되었다.

 

“요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노아는 쉬고 계세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방에서 나온 아카아시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고 있는 야나기를 도와주고는 그대로 야나기를 부엌 밖으로 가볍게 밀었다. 에? 나도 도울게요. 괜찮습니다. 오늘은 제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등을 미는 아카아시의 행동에 당황해 저도 돕겠다 말했지만 아카아시는 다정하게 웃으며 거절했다.

 

“음…,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요.”

“네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거실로 나왔지만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흠… 어쩔까나…?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러나 생각이 난 책. 지난번에 읽으려고 사두었던 것이지만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아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것이었다. 그 책이 생각난 야나기는 거실의 한 쪽 벽면을 차지한 책장에서 소설책을 꺼냈다. 하드커버의 표지는 문구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아.”

 

저녁준비가 다 되어 야나기를 부르려던 참이었다. 아일랜드형의 벽 없이 앞이 트인 주방은 거실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창틀로 쓰이는 곳에는 아카아시와 야나기가 함께 찍은 커플사진이 여러개 놓여 있었고, 작은 선인장도 있었다. 그 창틀로 고개를 내민 아카아시는 무한히 책에 빠져있는 야나기를 보았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거슬렸는지 틀어 올린 채여서 옆모습과 목선이 그대로 다 보였다. 괜히 또 설레는 것에 아카아시는 큼, 하며 헛기침을 했다.

 

“노아”

“…….”

“노아, 식사준비 다 됐습니다.”

 

한 번의 부름에는 답이 없었다. 알고 있는 사실인지라 아카아시는 망설이지 않고 부엌에서 나와 야나기에게 다가갔다. 머리 위로 생기는 그림자에 그제야 야나기가 고개를 들었다. 아. 작은 탄성을 내니 아카아시가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하나에 집중하시면 다른 것은 보지 않으시는군요.”

“아, 미안해요.”

“아뇨, 사과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니까.”

 

식사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식기 전에 먹어요. 책을 덮어 테이블에 놔둔 야나기가 몸을 일으키자 그 뒤를 아카아시가 따라갔다. 부엌의 식탁에는 맛스럽게 차려진 규동과 몇 가지의 반찬이 있었다.

 

“와, 맛있어 보여요.”

“실제로도 맛있습니다. 어서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야나기가 젓가락을 들자 그제야 아카아시도 젓가락을 들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소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까 무슨 책 읽고 있었습니까?”

“힐링수필이요. 표지의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버렸어요.”

“그렇게까지 노아의 마음에 들다니, 드문 일이네요.”

 

어떤 문구인가요? [별가루 녹아내린 은하수 길 따라 걷다보면, 너의 마음에 닿을까?], 아름답죠? 잔잔하고. 노아에게 어울리는 예쁜 말이네요. 한편의 시와도 같은 문구를 읽어주는 야나기에 아카아시는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아침부터 일찍이 약속이 생겨 나가는 야나기를 배웅해준 참이었다. 야나기가 나갔을 뿐인데 집은 적막이 흘렀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한 아카아시가 시계를 보더니 느즈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을 텐데.”

 

작은 중얼거림엔 소망이 담겨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 지난번 사온 것을 꺼내놓았다. 갈색종이봉투 안에는 쿠키와 초콜릿을 만드는 틀과 재료가 들어 있었다. 오늘은 2월14일이였다.

 

아카아시의 제과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야나기의 애플파이가 아니면 먹질 않는 코즈메도 맛있다며 먹을 정도였다. 그에 만든다는 것에 부담은 없었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아카아시의 연인인 야나기 노아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일 큰 난문에 아카아시는 재료를 사왔을 때부터 고민했다. 그 고민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것에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봉봉 쇼콜라랑 타르트로 변경하는 수밖에.”

 

고민 끝에 나온 해결책에 아카아시는 나름 만족했다. 고민이 끝난 후는 쉬웠다. 필요한 재료를 다듬고, 초콜릿을 중탕으로 끓이고, 파이를 굽고, 만들었다. 얼리고 식히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꽤나 소비되었다.

 

“어, 벌써 시간이….”

 

만드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아카아시였다. 잠깐 시선을 돌리다 본 시계는 어느새 야나기가 돌아올 시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데코레이션과 포장만 남은 것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정성스레 포장한 박스들이 주인을 기다렸다.

 

“다녀왔습니다.”

 

도어락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야나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아카아시는 부엌의 조명을 무드등으로 바꾸며 야나기를 기다렸다.

 

“? 케이지, 자요?”

 

어두운 집 안에 야나기는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없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집의 구조상 현관과 부엌이 바로 보이지 않는 터라 야나기는 벽을 짚으며 걸어야 했다.

 

“케이…지?”

“어서 오세요, 노아.”

 

눈을 깜박이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카아시가 살며시 팔을 잡아 당겼다. 당기는 힘에 가볍게 끌려오는 야나기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아카아시가 말했다. 줄게 있어요. 잠깐만 이러고 있어주세요. 당황했지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걸어 야나기를 식탁 앞에 대려다 놓고서야 아카아시는 눈을 가린 손을 내렸다. 눈을 뜬 야나기는 제 눈앞에 놓인 포장 된 박스를 보며 갸웃했다.

 

“오늘, 발렌타인데이래요.”

“아. 에? 오늘…?”

“항상 노아가 줬으니까 올해는 제가 주고 싶었어요.”

 

몰랐다는 얼굴에 아카아시는 엷게 웃으며 상자를 내밀었다.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조심히 포장된 리본을 풀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아기자기한 모양의 한 입 크기의 봉봉 쇼콜라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야나기는 쇼콜라 하나를 집어 입술에 머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아카아시에게 다가갔다.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다정스레 뺨을 잡아왔다.

 

똑, 바삭.

 

초콜릿의 껍질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봉봉 쇼콜라의 안에 들어있던 라즈베리의 시럽이 흘러나와 입안에 넘쳤다. 달콤한 라즈베리 시럽과 씁쓸한 카카오의 맛이 섞여 혓바닥에 녹아내렸다. 하나 머금은 초콜릿이 전부 녹아 없어질 때까지, 키스를 했다. 쪽, 츄ㅡ, 사랑스러운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입 안에서 사라진 초콜릿에 야나기가 입을 떼었다. 키스를 할 때면 어여쁜 복숭아 빛으로 물드는 볼이 예뻤다.

 

“어때요? 한 번 더?”

“다 먹을 때까지 하죠, 뭐.”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쇼콜라를 들어 보이는 것에 아카아시가 피식 웃으며 제 입술에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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