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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HO / MCU

토니 스타크×캐서린 캠벨

“트루디, 14일에 나랑 영화 보러 안 갈래요? 전에 얘기했던 그 영화가 재개봉 한다고 해서―”

“앗, 그 날은 로키랑 약속 있어요. …키티는 토니랑 데이트 안 해요?”

“매일 얼굴 보는데 무슨 데이트예요. 유나한테 말해야겠다.”

“에―”

 

“유나, 14일에 영화 보러 안 갈래요?”

“14일이요? 토니랑 데이트 안 해요?”

“왜 다들 그걸 물어봐요?”

“그야 밸런타인이잖아요. 저도 버키랑 데이트가 있어서…….”

“…….”

“몰랐어요?”

“……어쩐지 그 날만 상영을 한다 했지!”

“네?”

“로맨틱 코미디거든요. 그래서 특별 재상영하는 거구나.”

“…….”

“그럼 데이트 잘 해요!”

 

“토니, 14일에 뭐 할 거예요?”

“14일? 어디보자, 프라이데이? 내가 14일 날 뭐 하지?”

[스위스에서 열리는 대(對)테러 대책 세미나가 15일이라서 14일에는 출발하셔야 해요. 비행기를 타고 가시기로 했으니까요.]

“그렇다는데?”

“그럼 혼자 보러 가야겠네.”

“뭘?”

“영화요. 그 날만 상영하는 영화가 있어서요. 잘 다녀와요. 아참, 그 날 나 휴가 쓸 거예요.”

“언제부터 물어보고 썼다고. 재밌게 봐.”

 

캐서린 캠벨과 토니 스타크는, 주관적, 객관적, 어느 쪽으로 보았을 때도 사이좋은 커플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같은 집에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서로의 집에서 자는 경우도 많다보니 보통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날이 일주일에 5일 이상은 되었고, 그런 생활이 불편하다고 느낀 적도 거의 없었다. 모든 취미나 취향이 맞지는 않더라도 서로의 취미와 취향을 충분히 존중할 수 있었고, 생활 방식에 대한 것도 그랬다. 섹스를 하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지만, 섹스도 좋았다. 싸움이 나더라도 금방 해결하는 편이었고, 예외적으로 싸움이 두 달 정도 지속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결과는 약혼이었다. 거기다가 한 쪽은 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고 한 쪽은 자식이 결혼만 한다면 상대가 누구든지 좋아할 가족들만 있는지라 집안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고, 서로의 친구들과도 제법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었다. 어느 면에서 보아도 큰 문제가 없는 커플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들이 사이가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커플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한쪽이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도 여태껏 따로 살고 있다는 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고(두 사람이 같이 살 집을 따로 짓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약혼을 하고 거의 1년 동안 결혼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반지도 주고받지 않았다는 점도 그랬고, 밸런타인데이에 데이트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랬다. 심지어 그 밸런타인데이가 두 사람의 기념일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 그러하고 말이다.

 

 

4년 전 밸런타인데이.

두 사람은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풋풋하고 알콩달콩한 커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사실 이 당시의 두 사람은 무척이나 서먹한 상황이었다. 전 해 크리스마스의 모험 끝에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알고, 받아들이기로 한 지 한 달이 지났고 나름대로 데이트 비슷한 것도 세 번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이는 뭔가 진전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키스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캐서린은 이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았다. 토니와의 데이트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보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데이트이기는 할 것이다. 두 사람의 데이트에는 레스토랑도, 산책도, 영화도 없었으니까. 물론 토니의 개인 셰프가 차려준,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에 견줄만한 식사는 있었지만, 두 사람의 데이트는 대부분 토니의 랩에서 이루어졌다. 기계 공학과 전자 공학과 컴퓨터 공학 사이 어딘가에서 이루어지는 데이트. 그리고 간간히 뉴욕이 내려다보이는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랩으로 돌아가고, 남들이 보기에는 데이트 같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캐서린은 그 데이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캐서린에게 있어서 토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때가 가장 아름답고 섹시했다. 애초에 캐서린이 좋아한 것은 조만장자 플레이보이인 토니 스타크가 아니라, 엔지니어인 토니 스타크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서린이 바라는 것이 토니와 랩 브라더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다. 캐서린과 토니가 평범하게 친구처럼, 동료처럼 지낼 수 있는 사이었다면 두 사람이 몇 개월 동안 마음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두 사람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 로맨틱한 감정이었다. 단순한 친구가 아니고,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왜 이런 어중간한 상황이 되어버린 걸까.

캐서린은, 그래도 세 번째 데이트에서는 뭔가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키스라든지, 키스라든지, 키스라든지 말이다. 캐서린의 하찮은 연애 인생에서도 대부분 세 번째 데이트에는 키스가 동반되기 마련이었다. 아니, 보통은 그 이상이었지. 그런데 세 번째 데이트에도 아무 일도 없다니…….

이 모든 것이 토니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21세기씩이나 되어서 남자가 키스하기 전에 여자는 키스하지도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캐서린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그런 분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 번의 데이트에서 모두, 두 사람은 그냥 재미있게 놀고 즐겁게 헤어졌다. 로맨틱한 분위기도, 은근한 시선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열심히 떠들고 토론했고, 헤어질 때는 다음을 기약하기는 하지만 아쉬운 것 없이 인사하고 헤어졌다. 이런 걸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두 사람이 사귀기 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뭔가 긴장감이 존재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 키스하려나? 싶은, 조금 아슬아슬한 긴장감. 왜 사귀자마자 그런 것들이 깨끗이 사라져버린 걸까.

그 해 밸런타인데이에는 아무런 약속이 없었다. 캐서린은 계속 되는 야근 탓에 밸런타인데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있었다. 만약 토니가 그 날 만나자고 했더라도, 캐서린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을 것이고, 토니는 그걸 알았기 때문에 캐서린에게 묻지 않았다. 캐서린이 그 날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날 퇴근 시간이었다. 부하 직원들이 퇴근할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벌써 퇴근 시간이야? 두 시간은 더 해야 끝날 것 같은데.’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가지러 나왔는데 직원 중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밸런타인데이인데 야근하려고요? 토니 스타크가 밸런타인데이도 안 챙겨줘요?”

지난 사건―토니가 트리스켈리온의 겨의 모든 컴퓨터를 해킹해서 자신의 ‘Sweetheart'를 찾고, 며칠 후에는 캐서린의 등짝에 ‘My Sweetheart'라는 쪽지를 붙여 놓은 사건―덕에 토니와 캐서린의 사이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캐서린은 그제야 그 날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토니가 물어봤더라도 캐서린이 바빠서 안 되다고 했을 거고, 만약 바쁘지 않았더라면 또 뭐 하겠는가. 밸런타인데이에 데이트까지 해놓고는 또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싫었을 테니 말이다. 캐서린은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바빠서요.”

우리 상사는 토니 스타크를 잡아 놓고도 일만 하네 어쩌네 하는 얘기들이 조금 오간 후 텅 빈 사무실을 보며 캐서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캐서린은 이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토니 스타크와 연애라니, 캐서린을 아는 사람은 모두 웃었을 얘기다. 캐서린은 일반적인 연애와도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의 ‘특별한 관계’는 귀찮았고, 스킨십에 대한 갈망도 없었다. 로맨틱한 관계를 즐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섹슈얼한 관계에 대한 미련이 없으니 발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토니도 슬슬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캐서린과 함께 하는 것은 즐겁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이상하게, 그 사실이 슬프지는 않았다. 토니와 연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렇게나 슬프고 괴로웠는데 연인이 된 후에는 그게 깨지는 것이 슬프지 않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그 또한 두 사람이 그냥 거기까지인 관계라서 그런 거려니, 싶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로맨스가 빠지더라도 아무 문제없겠지. 캐서린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캐서린이 퇴근을 했을 때는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거의 텅 빈 거리를 터덜터덜 걸을 때는 머릿속에 피곤하다는 생각과 오늘 미처 처리하지 못한, 내일 할 일에 대한 생각 밖에 없었었지만, 차라리 그게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어떻게 해야 토니에 대해서만 생각 했을 테니까.

하지만 집 앞에 도착한 순간, 자신의 집 현관에 기대어 서있는 사람을 본 순간, 캐서린은 결국 토니를 생각해야 했다. 어쨌거나,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눈앞에 있는 토니 스타크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기는 힘들었으니까.

토니는, 고전적이게도, 빨간색 장미 꽃 한 다발을 발치에 내려놓고 뭔가 생각하는 듯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다가 캐서린이 거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야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캐서린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해피 밸런타인.”

캐서린은 그 인사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을 알고 있었다. 그 대답은 키스였다.

 

“우리 둘이 대화라거나, 하여튼 뭔가를 하게 되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지. 심지어 그 ‘다른 게’ 키스나 섹스라도 말이야……. 정말 말도 안 되는데, 그렇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데이트 없이 키스만 하려고 했는데, 음, 이쁜이가 먼저 해버렸네.”

토니는 그렇게 말하고 또, 그러니까 한 20번째로 캐서린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가볍게 얹었다 떼어냈다. 물론 버드 키스가 20번쯤 된다는 것이지 그 외의 것을 합하면 더 많겠지만…….

“그래도 이제 ‘다른 것’도 재미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괜찮겠네요.”

캐서린은 키득거리며 토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면서도 이게 굉장히 캐서린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다. ‘키득거리면서 상대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니. 캐서린은 한 번도 누군가와의 스킨십 후에 어색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데 키스와, 스킨십과, 섹스를 한 번에 거치고 나서도 이렇게 즐겁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뭐 어떠랴.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아무런 상관없겠지.

“내 계획과는 다르지만……. 생각해보면 이쁜이랑은 한 번도 계획대로 된 적이 없었네.”

“계획은 뭐였는데요?”

캐서린이 고개를 들고 묻자 토니가 작게 ‘으음’ 하더니 말을 이었다.

“글쎄, 진짜 첫 번째 계획은 첫 데이트에서, 내 거실에서 뉴욕의 야경을 보면서 와인을 마시다가 내 침대로 골인하는 거였지. 그런데 그 날 네가 자비스를 손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음…….”

“그래서 두 번째 데이트에서는, 랩에서라도 좀 로맨틱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키티 집중력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으음…….”

“그래서 세 번째 데이트에는 되도록이면 랩에 안 가려고 했는데 내가 멍청하게 슈트 업그레이드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망했지.”

“아, 그건 토니 잘못이네요.”

“아니, 난 얘기만 꺼낸 건데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고 난리를 친 건 너였잖아. 이쁜이?”

“……다 내 탓이래.”

캐서린이 쀼루퉁하니 대꾸하자 토니는 웃으면서 캐서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런 아기 고양이 양을 좋아하는 내가 제일 나빴네요, 그치?”

“그야 당연하죠.”

그 말에 토니는 또 웃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완벽한 밸런타인데이였다.

 

 

그렇다고 그 이후로 두 사람이 밸런타인데이를 열심히 챙겼냐면, 또 그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 다음 밸런타인은 두 사람이 장거리 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챙겼지만, 두 사람이 같이 살았던 세 번째 밸런타인은 별 거 없었고, 작년 밸런타인도 그냥 평범하게 지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같이 지내지도 않은 밸런타인은 올해가 처음이기는 했다. 약혼한 후 첫 밸런타인이 이래도 괜찮나,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제는 같이 잤고(토니가 출장을 갈 때는 으레 전 날은 같이 보내곤 했다.) 아침부터 사이좋은 커플답게 행동했으니 큰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토니와 캐서린은 원한다면 평범한 아무 날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특히나 토니는 기념일보다도 아무 날에나 이벤트를 벌여 키티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캐서린이 집착하는 기념일은 생일과 크리스마스뿐이었고, 그나마도 그냥 적당히 즐겁게 보내기만 하면 만족하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밸런타인데이 하루에만 상영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혼자 보러 오는 건 좀 안 좋은 생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별 수 없었다. 캐서린은 커플들 사이에 혼자 있으면 주눅이 들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화관의 관객 95% 이상이 커플인 상황에서는 약간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여기보다 어벤져스 맨션에 있는 영화관 쪽이 더 크고 시설도 좋은데……. 하지만 가끔 ‘보통’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도 있지 않는가. 핸드폰도 마음대로 하면 안 되고, 영화를 중간에 멈출 수도 없는 곳에서 보고 싶은 영화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캐서린의 오른쪽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사방이 커플에 둘러싸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뭐, 그렇다고 앞, 뒤, 왼쪽 3면이 커플로 둘러싸인 지금이 안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캐서린의 오른쪽 자리는, 영화가 시작된 후에도 사람이 오지 않은 것을 보아서 그냥 어중간히 빈 자리겠거니 싶어 캐서린은 그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 사람이 들어온 것은 영화가 시작된 지 15분이 지나서였다. 캐서린의 자리는 영화관 한가운데라서 “죄송합니다.” “실례할게요.” 라는 말이 다섯 번 정도 들리고 나서야 자리의 주인이 캐서린의 옆 자리까지 다다랐다. 캐서린은 영화에 집중을 하고 있던 터라 그 목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그게 자기 옆자리 사람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사람이 캐서린의 바로 옆에 와서 “가방 좀 치워줄래요?” 라고 말하고 나서야, 캐서린은 그 사람이 자기 옆 자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속으로 욕을 하며 시선은 스크린에 고정한 채로 가방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그리고 또 다시 옆자리 사람은 잊었다.

그러다 한 20분이 지나서였을까, 캐서린은 자기 허벅지에 스윽, 하고 뭔가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범인은 명백했다, 옆 자리 사람이었다. 캐서린은 잔뜩 화가 나서 자기 허벅지에 올라온 손을 쳐내고 고개를 돌렸는데―

“자기 약혼자 목소리는 좀 알아듣지 그래, 이쁜이?”

토니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웃고 있었다. 마침 스크린에서는 장미 꽃잎이 날려, 토니의 얼굴에도 꽃 빛이 아른거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못 알아들었다고 치한 흉내를 내는 건 뭐예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캐서린이 투덜거리자 토니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들었을 줄 알고 만진 거지, 뭐가 치한 흉내야.”

뜨끔. 하지만 캐서린은 그래도 갑자기 그러는 건 나쁜 거니 뭐니, 하고 괜히 투덜거렸다. 토니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잡고 있는 캐서린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오늘 출발해야 한다면서요.”

캐서린이 토니의 손을 잡고 있는 오른손에 살짝 힘을 주며 묻자 토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슈트 입고 날아가기로 했어. 그게 훨씬 더 빠르고 편하잖아. 프랑스 국방부가 별로 안 좋아하기는 했지만 밸런타인데이고, 프랑스잖아. 결국 허락해줬지.”

어쩌면 별 거 아닌 그 말에, 캐서린은 놀랍도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은 그랬다. 언제나 같이 있더라도, 같이 있어야 하는 날에는 같이 있어야 한다. 그게 1년에 한 번 어김없이 돌아오는 날에 불과하더라도.

 

“있잖아요, 토니.”

“나도 사랑해.”

“아, 좀.”

 

어김없이 행복한 밸런타인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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