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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비 / 노래의 왕자님

잇토키 오토야×에이사카 요루미

회색빛 구름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곧 눈이라도 내리기라도 할 건지 공기가 차갑다. 차가운 공기는 손끝을 타고 손가락,손가락 사이까지 파고든다. 장갑이라도 낄걸 그랬나? 겨울바람을 맞은 손등은 거칠어져 있었다. 괜히 제 손가락을 만지작 거렸다. 기숙사를 나와 학원으로 향했다. 졸업 오디션에서 우승한 오토야였지만 늘 시간이 나면 연습을 했다. 기타 연습이라거나, 발성 연습이라거나. 아직 제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연습하곤 했다.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연습실이 쓸쓸하다. 늘 제 옆자리를 지키던 파트너는 오늘은 없었다. 얼마전까진 이 시간에도 분명 같이 있었는데.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그는 외롭다는 감정이 들지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외로움은 반갑지 않았다. 그는 산책이라도 해 마음을 추스르기로 마음먹었다. 

연습실의 문을 열고 나가자 누군가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요루는 아닐테고.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 다가온 사람은 한 여학생이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A클래스는 아니고, S클래슨가? 교복 마이를 보니 S클래스는 아니다. 그럼 B클래스인가? 

 

“저기 무슨일… 아, 이쪽 연습실을 쓰고싶은거야? 그럼 내가…”
“아,아니아니요! 그,그게…. 이것, 받아주세요!”

 

여학생이 내민 것은 작은 상자였다. 그는 멀뚱히 여학생과 상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그가 먼저 입을 열기 전에 여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바,바,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이에요! 이번 졸업 오디션에서, 노래하는 오토야군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갔어요..!  …. 그,그러니까…  오”
“...아,미안. 그 다음말…. 은 ….”

 


떨리는 목소리, 빨개진 얼굴에 그는 대충 여학생이 무엇을 말할지 알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우물쭈물 거릴 그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확실하게 거절하기로 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건 받을 수가 없어.”
“그,그래도 괜찮아요! 이것만이라도 받아주세요!”

 

어색한 표정의 여학생이 그의 손에 상자를 쥐어주고는 반대쪽으로 재빠르게 뛰어갔다. 그는 제 손에 쥐여진 것을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연습실로 들어갔다.

 

 

 


*


그 후로도, 같이 수업을 들었던 여자아이들과 (오토야 본인은) 처음본 여자아이들에게도 초콜릿을 받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봐서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그 자리를 피했다. 결국 다시 기숙사로 돌아온 그는 받은 초콜릿을 책상 위에다 아무렇게나 나두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정작 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받지도 못하고 얼굴도 보지 못했다. 오늘, 볼 수 있긴 한걸까.

 

 

 

 

시끄럽게 우는 전화기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침대에 누운채로 그는 잠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나른한 정신으로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엥, 기숙사 안에 없어? 연습실이야?」
“으응…. 있어, 안에…”
「있으면 문 좀 열어줘… 나 여기 앞인데...」

 

요루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제?언제부터!? 전화를 끊지 않은채로 그는 제 방의 문을 열었다. 정말로, 제 방 앞에 그녀가 있었다. 어,어어,어서 들어와… 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내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요루미는 연신 손을 호호 불고 있었다. 손 시려워. 그녀는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어내었다. 그 말을 들은 오토야는 그녀의 손을 잡아 제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차가운 기운이 볼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는 제 볼을 비볐다.

 

“그런데, 여긴 왜?”
“뭐 좀 주려고 왔는데… 안 줘도 될 것 같네!”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응?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책상위에 놓여진 초콜릿을 가르켰다. 이거, 많은데? 그는 잠깐 멍하니 요루미를 보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초콜릿?!”
“주려고 했는데~ 오토야군은 많이 받아서 요루미양 건 필요없을 것 같네요~ 안녕!”

해맑게 웃으며 현관문을 향하는 요루미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이럴때만, 항상 장난을 친단말이야. 부끄러운 걸 숨기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장난을 치고 싶은건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 요루를 엄청 기다렸는데! 혹시, 초콜릿… 주지 않을까,하고.”
“당연히 준비했는걸! 오전에 만드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처음 만들어보는거야. 초콜릿. 누군가를 위해서 만드는 것도 처음이고.”


 
볼을 붉히며 말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 모습에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겨울의 바람냄새와 함께 그녀의 향기가 섞여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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