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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님 / 메이플스토리

매그너스×르네

* 모럴없고 근본없는 섹드립 주​의

 

“야,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건데.”

 

손끝으로 제 턱을 더듬던 남자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낮게 고인 목소리에 새까만 머리카락을 흘리며 뒤돌아본 여자는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꿈뻑거렸다.

 

“나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지.”

“네? 알죠...”

“......”

“......아, 알죠......”

 

잠시 미간을 구기는 듯 하다가, 찬찬히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하며 눈썹을 늘어트렸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주저하며 대답하는 동공이 떨린다. 모른 척 해 주려고 해도 너무 확연한 표정변화에, 남자는 조용히 확신했다. 역시 그 날이군.

 

 

 

예쁘장한 티테이블에 결 좋은 새까만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퍼져 반짝인다, 중심에서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흐느끼는 여자의 움직임에 따라 일렁이는 흑색 파도는 이루 말할 것 없이 아름다웠다.

딱 그것만.

 

“어떢게, 어떢꼐, 어떣꺠......”

“...문법 파괴 그만 하고 정신 좀 차리세요.”

 

새까만 머리카락이 제 몸에 닿지 않게 테이블과 좀 떨어져 앉은 여자는 아주 식은 눈으로 엉엉 우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또 헛짓거리다. 일단 하나둘셋뿐인 말동무의 입장으로써ㅡ사실 반쯤 강제적으로 말동무가 된ㅡ 얌전히 말을 들어주고는 있었지만... 지 애인이랑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서 엉엉 우는 꼴이 사실 좀 지옥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녀는 저 여자의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부하 된’ 사람이었다. 까라면 까야지. 언젠가의 태초에 네쟈라는 이름을 받은 이는 약간 정신을 날려보내고 테이블에서 흐느끼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따흐흑 으흐흑 뭘 드려야 해......”

“...작년에는 뭘 드렸는데요?”

“몸...”

“......”

 

......상대할 가치가 없다. 네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올해도 함 뜨세요.”

“평소에 하는 거잖아!”

“초콜릿도 발렌타인에만 먹는 건 아닐 텐데요...”

“어흐흑 어떠케...”

“제 말 들을 생각 없으시죠?”

 

눈물로 젖어 살짝 뭉친 새까만 속눈썹마저 사랑스러운 얼굴로, 테이블 위를 뒹굴며 움뮴뮴먐먐운냥묨묨 하고 있는 가느다란 체구의 여자. 정말이지 조화 없는 조합이 아닐 수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조화를 흐리고 있는 건 고 사랑스럽게 생긴 주둥이 뿐이었으나, 세상에는 딱 한 종류의 혼합으로도 모든 것이 망가지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법이다.

 

“...르네 님.”

“흐냐웅아......”

 

네쟈는 제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에게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그녀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자신을 위해 소리죽인 박수를 쳐 주었다. 남이 보면 이 여자도 어쨌든 인세에 섞이기에는 부적절한 종이라 여겼으리라. 그러니까 저 여자ㅡ 르네의 최측근에 존재하는 이들은, 아무튼 그 정도의 혼란스러움은 가지고 있는 이들인 법이었다. 왜냐면 르네 본인이, 혼란스럽고, 번잡하며, 종잡을 수 없는 이들 중에서도, 아마 그 중에 가장 인세와 동떨어진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인격적으로도 그러했고, 그러나 가장 동떨어진 것, 다른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와닿는 이질감은 그 인격이나 사상이나 종족 따위가 아니라 그녀의 진영이었다.

 

세계를 지배하려는ㅡ아니 파괴하려는? 또 모르지, 그의 의중은 아마 똑같이 속을 알 수 없는 선대 드래곤 마스터 정도가 되어야만 읽을 수 있으리라.(아니면 이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서, 모든 흐름을 지배하는 신이나 혹은 어떠한 조율자 정도라든지.) 아무튼 그렇게 속을 알 수 없는, 더없이 깊고 깊은 어둠의 지배자, 그 영의 중심과 온갖 혼란과 절망의 구렁텅이 가장 내부에 있는 왕. 검은 마법사. 언젠가 빛이 들지 않는 숲 속에ㅡ아니, 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자.

아무튼 검은 마법사, 그의 종속, 그 중에서도 가히 최측근이라 할 만한 존재, 장막에 가려진 그의 곁에서 쓰다듬어지며 만족스럽게 그르렁대는. 그렇다, 어쨌든 악이라 불리는ㅡ 정의와 연합의 건너편에 선 이, 검은 마법사의 사냥개, 혹은 애완견, 조롱 섞인 그 격하마저 느긋하게 농락하는 여자. 아마 이 설명을 들었더라면 르네는 깔깔 웃으며 끼어들어 “그게 바로 나다!” 하고 외쳤을 것이다.

세상에, 그렇다면 설명이 끊어질 수가 없지. 르네의 반응을 바로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가 질리도록 인용해 대는 문구의 주인에 대해서.

 

언젠가의 어딘가에 사랑으로만 살아가는 종족이 있었다. 가엾게도 그 중의 한 개체가 끝없는 사랑과 이어진 희생 끝에 거의 망가져 버리고 말았는데ㅡ 존재하지 않는 안식을 찾아 헤멘 끝에 평화를 찾은 그는 이제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 결심하며 되찾은 평온을 누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심지어는 포악하고 사악하며 세계의 의지를 정면으로 반하는 쪽에 서 있는ㅡ사실, 굳이 말하자면 이것만은 그닥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그는 그 시점에서 이미 ‘그런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ㅡ어쨌든 누가 봐도 악한 자, 그 종족 내에서 폭군이라는 이명이 붙은 지독한 용족의 남자에게.

사실은 사랑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문제는 그 폭군이 사랑을 모른다는 점에 있었다.

폭군은 사랑을 학대했고 끝없이 몰아붙였다, 자신을 떠나가리라는 그 불신의 신뢰는 당연하게도 그 스스로를 어지럽히는 사랑에서 싹튼 것이었다. ㅡ......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극한의 인내 끝에 폭군은 사랑을 인정하고야 말았다는 것으로 끚맺음을 내도록 하자.

그러니까 그 폭군이, 그 문구의 주인, 사랑이 사랑하는 자,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순종을 느긋하게 맛보며 군림하는 남자.

 

“어허엉, 매그너스 니이임......”

“......여기 그 분 좋아하는 사람은 르네 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부르짖어봤자인데요.”

 

착각할까봐 덧붙이는 말이지만 검은 마법사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그러니까 그 강아지는 결국 그의, 매그너스의 소유가 아니라... 아무튼 르네는 엉엉 울며 사랑하는 사람... 이 아니라 용... 그러니까 정확히는 용의 모습을 일부분 이어받은 노바족이라는 종족... 사람은 인간만을 칭하는 언어가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뭘 드려야 해, 뭘 드려야 해...”

“......매그너스 님이 좋아하는 걸 드리는 건 어때요?”

“그치만 난 초콜릿을 드리고 싶은걸...”

“단 거 안 받는다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셨다면서요.”

“따흐흑...”

 

...네쟈는 조언을 포기하기로 했다.

네쟈가 포기하거나 말거나, 르네는 훌쩍훌쩍 울면서 테이블에 볼을 문댔다, 반짝반짝 예쁘게 잘 닦인 흰 대리석이 더운 열기를 뒤집어쓰고 흐려졌다가 맑아지기를 반복한다, 제 까만 눈동자의 잔영을 훌쩍이며 바라보던 르네는 문득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하품하는 네쟈를 쳐다보았다.

 

“...너 가터벨트 했니?”

“애인이 좋아해요.”

“네 애인이면 히... ...아니다, 됐다.”

 

......분명 걔랑 얘랑 견원지간 아니었나? 말로 서로를 장대하게 포뜨며 싸우던 건 다 잊으셨는지... 알고 싶지 않은 뜨거운 염장질을 대충 눈치로 알아챈 르네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테이블에 얼굴을 묻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 그게 있다!”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난 르네의 까만 두 눈이 반짝거렸다. 안녕, 나 갈게! 하는 작별음만을 남기고 퐁 사라진 르네의 잔영을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바라본 네쟈는 그냥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매그너스 님, 매그너스 님, 매그너스 님!”

“아니 므ㅓ, 아니. 윽. 뭐야, 뭔데.”

 

이 망아지 같은 계집애가 또 대체 무슨 일인지. 막 침실로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반짝거리는 목소리에 매그너스는 인상을 구기며 갑주를 벗었다.

 

“매그너스 님,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예요!”

“......어, 그래. 난 네가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안 보이길래. 괜히 속 좁아 보여서 뒷말은 뺐다. 매그너스는 삐죽해지는 제 눈매를 숨기지 않고 침대 위에서 방방 뛰는 르네를 바라보았다.

 

“저기, 매그너스 님, 초콜릿을... 싫어하는 건 아니시죠?”

 

내 말을 주둥아리로 씹어먹었나? 갑자기 수줍은 기색을 하고 제 치맛자락을 붙잡는 르네를 바라보는 매그너스의 눈매가 더 삐죽해졌다.

 

“단 거 별로랬잖아.”

 

됐다, 저게 내 말귀 못 알아들은 게 한두 번... ......그러고 보니 없는데. 아니다, 없을 리도 없다. 매그너스는 잠시 르네가 알면서도 못 들은 척 외면한 것을 제외한, 말귀 못 알아들은 기억을 더듬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 얼굴에 감도는 미묘하게 음흉한 기색을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준비했어요!”

“...?”

 

어.

헉.

 

...그러니까, 초콜릿은 기본적으로 녹여서 굳히는 것이다.

매그너스의 사고는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 그 이상 나아갔더라도 검열원의 입장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겠지만ㅡ 어쨌든 그래서, 그러니까 초콜릿, 생략.

 

매그너스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서 르네를 바라보았다. 달아오른 뺨을 하고, 살며시 제 옷깃을 그러쥔 채 부끄러운 듯이 올려다보는 순종적인 눈빛은, 그에게는 유혹 그 이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매그너스 님.”

 

드시겠어요?

 

매그너스는 조용히 이성을 놓아주었다.

 

 

+

 

‘...젠장, 이번엔 안 받고 주려고 했는데!’

 

뭐, 그런고로, 폭군님이 제 서랍 속에 고이 잠든 예쁘고 사랑스러운 포장의 초콜릿을 꺼내는 것은 결국 발렌타인데이는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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