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타클로스
에이스 트라폴라 드림
일어 날 사람은 전부 일어났을 주말 오전.
모처럼의 휴일이니 다 함께 모여 놀러 갈까 싶어 아이렌을 찾아온 에이스는 뭔가 바빠 보이는 상대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아이렌, 뭐 하고 있어?”
이렇게 어수선한 와중 그림은 어딜 간 걸까. 앞치마 차림으로 혼자 게스트 룸에 남아 벽난로 주변을 바삐 움직이던 아이렌은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허리를 바로 폈다.
“벽난로랑 굴뚝 청소.”
“갑자기?”
“곧 크리스마스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 있지.
에이스는 상대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멈칫했지만, 이내 크리스마스와 벽난로의 연관성을 떠올리고 탄식했다.
믿기진 않지만, 딱 하나 있지 않나. 벽난로나 굴뚝이랑 관련이 있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설마, 너……. 평소엔 80살 먹은 노인처럼 굴면서 인제 와서 산타를 믿는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
이 학교에서 산타를 믿을 정도로 순진해 빠진 인간이 있을 리 없다. 굳이 따지자면 카림이라면 믿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이렌은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지 않나. 산타는커녕 신, 진리, 하물며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하느냐 마냐 고민하는 사람이 산타클로스를 믿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뜻밖에도 아이렌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쪽 세계에는 산타클로스 없어?”
“뭐!?”
설마 진짜 믿는단 말인가.
에이스는 당황했지만, 이내 상대의 말 중 ‘이쪽 세계’ 부분이 거슬려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저 녀석 세계는 마법도 없다고 하고, 뭔가 다른 점이 많으니까, 원래 세계에선 진짜 산타가 있었던 건가?’
산타도 요정도 인어도 수인족도 없는 곳에 산타만 있는 건 이상하지 않나.
하지만 정말로 아이렌이 살던 세계에선 산타가 당연히 존재하고, 하물며 10대 후반인 청소년에게도 선물을 주는 자비로운 할아버지라면, 자신은 뭐라고 답해야 하지? ‘여기엔 없다?’ 아니면 ‘이 세계에선 우리 나이까지 선물을 받는 녀석은 없다.’ 쪽이 나은가?
“산타 할아버지 없어?”
“어, 음.”
“없어?”
역시 제 성격을 생각하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지만, 진짜 말해줘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저렇게 옷이 숯덩이가 될 정도로 청소하고 있는데, 실망시키긴 싫단 말이다.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에이스의 입매가 조금씩 일그러진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렌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곤 시원스럽게 웃어버렸다.
“아하하하!”
진실을 알려주는 게 민망할 정도로 진지했던 모습은 어딜 간 걸까.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웃은 아이렌은 다시 청소 도구를 집어 들었다.
“장난이야. 이 나이까지 산타를 믿는다고 거짓말하기엔 좀 그렇잖아? 내가 그렇게 순진한 사람도 아니고.”
이런. 속아 넘어갔다. 연극영화부 부원 아니랄까 봐, 연기력이 제법이지 않나.
자신이 짓궂은 장난에 당했음을 깨달은 에이스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게 작은 분노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반격의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 걸 보아선 애초에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너…….”
“미안, 미안. 그런데 누구 하나쯤은 진짜 굴뚝으로 쳐들어올 거 같기도 해서 미리 청소해 두려고.”
“어?”
“정말 하실 거 같진 않은데,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몇 있더라고.”
어째서일까. 그 ‘흥미를 보이는 사람’의 후보가 몇 명 정도 절로 떠오른다. 발소리가 나지 않는 어느 사냥꾼이라던가, 재미있는 일은 일단 실행하고 볼 같은 동아리의 인어 선배라던가, 갑자기 허공에서 거꾸로 나타나는 선배도 있고, 어쩌면 선물을 나눠주는 걸 좋아하는 인심 좋은 대부호의 장남도 의심되는데…….
‘후보가 생각보다 많이 떠올라서 곤란한데.’
그렇다고 진짜 산타 흉내를 낼까.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저지를 인간들이 잔뜩 있어 곤란한 학교다. 에이스는 왜 아이렌이 저런 농담을 했나 이해가 가서 기분이 풀렸다가, 다시 청소에 열중하는 아이렌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풉!”
“음? 왜 웃어?”
“너, 수염 생겼어. 알아?”
“응?”
이해가 안 가는 말에 근처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본 아이렌은 짧게 탄식했다. 일에 열중하느라 몰랐는데, 무의식적으로 얼굴 땀을 닦아서 그런지 손의 검댕이 꼭 수염처럼 얼굴에 묻어있었다.
안 그래도 머리카락까지 검은색이라, 얼굴의 검은 얼룩이 정말 수염처럼 보인다.
엉망이 된 제 얼굴을 보던 아이렌은 뻔뻔하게 에이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하, 하, 하. 메리 크리스마스. 에이스 트라폴라 군.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뭘 줄까!”
“하하하! 뭐야, 그게! 하하하!”
하여간 진지했다가 장난스러웠다가, 종잡을 수 없이 엉뚱한 녀석이다.
그러나 그런 점이 또 아이렌의 매력 아니겠나.
놀러 가자고 권유하려고 했던 것도 잠깐 있고 폭소한 에이스는 숨이 가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저 웃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