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핫초코
아줄 아셴그로토 드림
달그락.
테이블과 식기가 부딪치며 나는 맑은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쪽을 보며 웃고 있는 아줄이 보인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아이렌 씨.”
뜻밖의 상황에 의아해진 아이렌은 대꾸도 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평소라면 모스트로 라운지 구석에 앉아 업무 중이거나 상담 일로 바쁜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너무 바빠서 직접 일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늦은 시간이라 손님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라운지 안을 둘러본 아이렌은 얼떨떨한 얼굴로 아줄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지배인이 직접 서빙하는 경우도 있나 해서요.”
“보통은 없지요. 이건 특별 서비스입니다.”
“그래요?”
“그럼요.”
태연하게 대꾸한 아줄은 가지고 온 음료를 아이렌 앞으로 내민 후, 뭔가가 담긴 작은 접시를 하나 더 내려놓았다. 쟁반 위 식기를 모두 테이블에 옮긴 그는 뒤따라온 후배에게 빈 쟁반을 넘긴 후, 자연스럽게 아이렌의 옆에 앉았다.
지금 보니 이거, 서빙이 본 목적도 아닌 거 같다.
보통이면 앉아도 되겠냐고 물은 후 앉을 텐데, 이리도 덥석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니 뭔가 긴히 할 말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이렌은 어쩐지 들떠 보이는 아줄의 모습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누른 후, 이것저것 올려진 테이블 위로 시선을 돌렸다.
머그컵에 담긴 데운 우유. 고급스러운 티스푼. 서비스로 나온 쿠키. 여기까지는 익숙한 구성이지만, 작은 접시에 담겨있는 내용물은 처음 보는 것인데.
아이렌은 당구공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초콜릿 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제가 시킨 건 그냥 핫초코 한 잔인데요.”
“압니다. 그건 서비스입니다.”
“흐음.”
천하의 아줄이 서비스라. 아마 다른 학생들이 이런 일을 겪는다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준 게 분명하다!’라고 외쳤을 거다.
하지만 아이렌은 알고 있었다. 아줄은 감성적인 말을 내뱉거나 상냥하게 대하는 것 대신, 물질적이고 실속있는 도움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제 입으로 말하기엔 좀 낯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이 선배에게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지.
주는 것에 익숙한 탓에 무언가 받는 건 익숙하지 않지만, 제가 그 호의를 받음으로 상대가 기쁨을 느낀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아줄을 위해서라도 사양하지 않는 게 답임을 아는 아이렌은 장난스레 웃으며 대꾸했다.
“오늘따라 서비스가 너무 과하신 거 아녜요?”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면 안 됩니다. 아이렌 씨에게만 해드리는 거니까요.”
“네. 입 꾹 닫을게요. 고마워요, 선배.”
고맙다는 그 한마디에, 아줄은 금방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웬만하면 뭘 받아도 일단 사양하는 말부터 나오는 아이렌이 제 호의를 단번에 받아준 것이 기쁜 것이었다.
그리고 우스운 것은, 아이렌은 또 그런 아줄을 보며 대단히 흐뭇해하고 있다는 것이었지.
티스푼으로 머그컵 안을 가볍게 저은 그는 접시의 초콜릿을 톡톡 건드렸다.
“이거, 코코아 밤(Cocoa Bomb)이죠?”
“예. 최근 핫초코를 자주 드시기에 준비했습니다. 만들어 진 걸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런 건 또 다른 재미가 있으니까요. 찾아보니 이게 가장 인기가 좋은 제품이라는 것 같더군요.”
“흠. 그럼 이제 이것도 옵션으로 파는 건가요?”
“아뇨. 팔려고 준비한 게 아닙니다. 당신만을 위해 마련한 거니까요.”
그거참 다정한 배려 아닌가. 오해의 여지가 없는 직설적인 표현에, 아이렌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큰 동요는 아니지만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상대의 반응에 한층 더 기가 산 아줄은 상대를 부드럽게 독촉했다.
“자, 식기 전에 넣어서 녹이세요.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군요.”
이런 제안은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아이렌은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 티스푼을 이용해 코코아 밤을 우유 속에 넣었다. 내용물이 튀지 않게, 천천히 뜨거운 액체에 입수한 코코아 밤은 금방 형태를 잃고 무너져 안에 들어있는 마시멜로를 토해냈다.
아이렌은 단맛이 잘 퍼지게 열심히 핫초코를 저으며 물었다.
“선배는 안 드셔보셨나요?”
“예. 아무래도 단 음료는 최대한 멀리하려다 보니.”
“단 걸 싫어하시는 건 아니죠?”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머리를 써야 할 때라면 초콜릿 하나 정도는 먹곤 하니까요.”
‘그렇구나.’ 혼잣말인지 대꾸인지 모를 한 마디를 중얼거린 아이렌이 혀가 데지 않게 조심하여 핫초코를 맛보았다. 늘 마시던 것과는 또 다른 제품이라 그런 걸까. 오늘의 핫초코는 한층 더 깊은 단맛이 나고 있었다.
“맛있다…….”
“다행입니다. 입에 맞으신 모양이군요.”
“네. 너무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씁쓸한 풍미가 있어서 좋네요.”
뜨거워서 한 번에 마시지 못하고 조금씩 내용물을 홀짝거리던 아이렌은, 흐물흐물해진 마시멜로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렇게 입안에 초콜릿과 마시멜로의 맛이 잔잔히 퍼졌을 즈음. 돌연 아줄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의 입술에 가볍게 제 입술을 겹쳤다.
쪽. 아주 잠깐이지만 확실하게 닿은 체온에 화들짝 놀란 그는 고개를 확 뒤로 빼며 붉어진 뺨을 손등으로 훔쳤다.
“아, 아이렌 씨?”
“선배가 주신 건데, 맛이라도 보시라고요.”
물론 겨우 입술이 스친 것 정도로는 핫초코 맛이 제대로 느껴질 리 없으니, 이건 그냥 수작질일 뿐이었다. 아줄은 장난스럽게 웃는 아이렌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