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리 없는 순록
제이드 리치 드림
비는 소리를 퍼지게 하지만, 눈은 소리를 흡수한다고 한다.
제이드는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성거리는 아이렌을 지그시 바라보며, 희미하게 들려오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뽀득뽀득. 눈이 밟히며 압축될 때 나는 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 발자국이 남겨진다. 마치 눈을 처음 본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있는 아이렌은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드의 시선은 눈치채지도 못한 건지, 도무지 돌아볼 기미도 보이지 않고 눈밭을 떠돌 뿐이었다.
‘겨우 눈 하나로 저렇게 신나시다니.’
고향이 눈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건 올해 첫눈도 아니지 않나.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소탈한 성격과는 별개로 매사에 진지하고 늘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가 기저에 잠들어있는 아이렌이 저렇게나 들떠있는 걸 보고 있자니, 이 얼음 결정이 참으로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익숙하지 않다고 무조건 열광하는 건 아닐 텐데.’
심지어 아이렌은 추운 걸 싫어하지 않은가. 지금도 입술에 푸른 기가 슬쩍 도는 것이, 추위 타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게다가 눈 쌓인 나무나 설경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는 아이렌의 붉게 물든 손끝을 보라. 저대로 둔다면 아마 내일은 감기에 걸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제이드는 쉽게 상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마치 혼자 산에 가 야생동물과 마주쳤을 때처럼.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그는, 문득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낸 나무들 사이에 선 아이렌을 보고 어느 육지 동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절묘하게도, 뒤에 있는 나뭇가지가 아이렌의 머리 부분과 겹쳐서 꼭 뿔처럼 보인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높게 뻗은, 매년 새롭게 돋아나는 생명력의 상징인 사슴뿔 말이다.
물론, 암사슴은 뿔이 돋아나지 않는다곤 하지만……. 순록은 암컷도 뿔이 난다는 모양이니, 너무 고증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겠나.
눈밭에 우두커니 선 꼬리 없는 사슴에 흥미가 생긴 그는 그제야 발걸음을 옮겨 상대에게 다가갔다.
“제이드 선배?”
아무리 눈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190cm나 되는 장신이 걸어오면 그 기척을 모를 순 없는 법이다. 아이렌은 가까이 다가온 제이드가 제 코트를 만지는 걸 내버려 둔 채, 그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제이드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제비꽃색 눈동자에 눈웃음 지어 보이더니, 코트의 단추를 하나하나 잠가주었다.
“감기 걸리십니다. 옷은 여미고 다니세요.”
“선배는 안 추워요?”
“제 고향은 꽤 추운 곳이라서,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코트 옷매무새를 정리해 준 후 비뚤어진 목도리도 매만져 준 그는, 문득 드러난 새하얀 목을 보곤 마른침 삼켰다. 평소에도 목이 가늘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까 잠깐 떠올린 상상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독 가늘고 길게만 보인다.
“선배?”
무언가에 홀린 듯, 조금씩 내려가던 고개는 이내 아이렌의 목에 닿았다. 따스한 숨결이 목선을 타고 흘러갈 즈음. 살짝 이를 세운 제이드는 아프지 않게 바디 미스트 향이 남은 목덜미를 깨물었다.
‘힉!’ 갑자기 날카로운 고통이 닿는 탓에 화들짝 놀란 아이렌은 급히 몸을 빼며 목도리를 빈틈없이 꽁꽁 둘렀다.
“뭐, 뭐예요?”
“그냥, 아이렌 씨가 좋아서요.”
“…….”
실없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걸까. 할 말을 잃은 아이렌이 입만 뻐끔거린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얼굴이 붉어져 있는 걸 보면, 이 갑작스러운 스킨십이 싫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열기가 오른 상대의 얼굴이 꼭 전설 속 루돌프의 코 같다고 생각한 제이드는, 결국 ‘후후’하고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