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국
루크 헌트 드림
“응?”
달도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겨울밤. 늦은 시간 외출 후 기숙사로 돌아가던 루크는 저 멀리서 움직이는 검은 물체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느릿느릿. 거리를 오가는 그것은 분명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는 쉽게 그게 제가 본 것을 믿지 못했다. 사람이 돌아다니기엔 늦은 시간이라 그런 건 아니었다. 당장 자신도 지금 귀가 중이지 않나?
루크가 제 눈을 의심하는 건 상대의 옷차림이 너무 얇다는 것. 그리고 그 얇게 차려입은 이가 원래라면 지독하게 추위를 타는 사람이라는 것.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꿈이나 환각은 아닌 듯한데.’
나부끼는 긴 치마,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땋은 머리, 발끝에서 자라난 그림자까지. 모두 눈밭과 대비되어 필요 이상으로 검게 보인다. 마치 잉크라도 부어놓은 듯 모든 것이 새까만 아이렌이 점점 멀어지는 걸 보고만 있던 그는, 결국 걷는 속도를 부쩍 올려 상대에게 다가갔다.
“아이렌 군?”
눈을 쓸어두어 깨끗한 거리와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루크의 걸음 때문에, 상대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 자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멍하니 앞만 보며 걷던 아이렌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고, 이내 자신을 부른 루크에게 인사했다.
“루크 선배, 안녕하세요.”
폐까지 찬 공기가 들어간 건지 파랗게 질린 입에서는 입김도 나오지 않았다. 루크는 그 점이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잠깐 말을 잃었다.
역시 환상인가. 하지만 이렇게 생생한데.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잘게 떨리는 아이렌의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크는 상대의 손을 잡아보았다.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차가운 게 느껴지는 손은 새빨갛게 굳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거니? 게다가, 이 차림은…….”
“계속 잠이 와서요.”
“뭐?”
“잠 깨려고…….”
멋쩍은 듯 웃으며 말한 아이렌은 잡힌 손을 빼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이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 후배가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같아, 괜히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세상 그 누가 춥다고 이런 날에 겉옷 하나만 걸치고 밖에 나온단 말인가. 심지어 여름에도 냉방이 잘 되는 곳에 가면 춥다고 하는 사람이 말이다.
할 말은 많지만, 그 모든 게 지금 아이렌에게는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겠지. 그걸 아는 루크는 최대한 말을 정제하여 짧게 말했다.
“왜 필사적으로 졸음을 쫓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가 감기에 걸리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구나.”
“괜찮……, 에취!”
“이런.”
이럴 줄 알았다. 아니, 오히려 이제야 반응이 나타난 게 신기할 지경이라 할까.
슬쩍 팔을 당겨 상대를 끌어안은 루크는 확 끼쳐오는 차게 식은 체취에 탄식했다.
“몸이 얼음장 같구나. 일단 어디든 들어가 따뜻한 걸 마시도록 할까?”
“괜찮아요.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씻고……. 아, 그럼 더 졸리려나.”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깨어있으려는 이유가 뭘까. 공부? 취미 활동? 그것도 아니면, 창작 활동이라도 하는 걸까?
이래저래 고민하던 루크는 제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아이렌의 귀에 속삭였다.
“해야할 일이 있는 거라면, 옆에 있어 줄까?”
“네?”
“졸면 깨워주고, 도와줄 게 있다면 도와주도록 할게. 어떠니?”
적어도 그게 잠 깨려고 영하에 가까운 기온의 밤에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 점은 아이렌도 공감하는지, 잠깐 눈동자만 굴리며 고민하던 희게 질린 얼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그럼.”
“잘 생각했어, 몽 르나르.”
일단은 벽난로 근처에 앉히고 코코아라도 마시게 해야겠다. 담요도 둘러주고, 해야 할 일이 뭔지도 차근차근 들어봐야지.
어째 제가 더 신이 난 루크는 가볍게 아이렌을 들어 올려 안은 채 고물 기숙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