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링
아르체미 알체미예비치 핀커 드림
눈이 많이 내리는 어느 날.
실습하고 있는 연구소를 나와 현자의 섬 시내를 돌아다니고 온 셜린은 품 안의 짐을 고쳐 들며 한숨 쉬었다.
‘이 심부름만 마치면…….’
그러면 오늘 일은 끝이다. 공식적으로 할 일이 끝난 후에는, 내일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코벤 유니버시티 칼리지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가 동급생들을 볼 생각에 들뜬 셜린의 긴 꼬리가 좌우로 가볍게 흔들렸다.
‘다들 잘 지낼까? 바빠서 연락도 거의 못 했는데.’
코벤의 4학년생들은 둘로 나뉜다. 학교에 남아 면학에 힘쓰며 마법사 면허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과, 취업을 위해 실습에 나서는 학생들. 물론 후자도 마법사 면허 시험을 준비해야 하긴 하니 실습에 나서는 건 괜히 짐만 많아지는 선택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좀 더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고 싶거나 빠른 취업을 위해 방도를 찾는 이들에게 실습 제도는 참으로 유용했기에, 셜린처럼 이렇게 현장에 뛰는 학생도 적지 않았으니까.
다만, 셜린은 하필 연구소로 간 탓에 다른 실습생보다 조금 더 바쁜 게 흠이라고 할까.
얼굴 본 지 오래된 친구들을 떠올리며 한숨 쉰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골목길 모퉁이를 돌았다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머리와 그대로 마주쳤다.
“오, 찾았다.”
“히익!”
깜짝 놀란 셜린은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상대가 잡아준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목 아래의 몸을 드러낸 체냐는 두 팔로 가볍게 셜린을 붙잡아 세우고 바짝 다가섰다. 온전한 모습을 한 상대를 가볍게 위아래로 훑어본 셜린은 기어들어 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 안녕. 체냐 군?”
“이제야 만냐네. 어딜 갔는지 한참 찾았다고.”
“나를?”
“내일이면 코벤으로 가지않냥? 그러니까, 미리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했지.”
평소보다 더 장난스럽게 웃은 체냐는 주머니에서 작은 키링을 꺼냈다. 보라색과 분홍색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 인형이 달린 그 키링은 고리 부분에 빨간 리본이 엉성하게 묶여있었다.
귀엽긴 한데, 왜 자신에게 이런 걸 주는 것인가.
그걸 고민하던 셜린은 곧 자신이 내일 자리를 비우는 이유를 떠올렸다.
“이거, 혹시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아무래도 그렇지? 다른 의미도 있을 수 있으려냥?”
체냐는 언제나처럼 아리송한 말투로 어깨를 으쓱였지만, 셜린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크리스마스 연휴 전까지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누군가에게 선물을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나, 나는 아무것도 준비 못 했어!”
“으응? 괜찮다구.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받기만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발만 동동 구르는 셜린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같이 보였다.
아무리 상대가 자신보다 한 살 연상이라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은 체냐는 슬쩍 제가 원하는 바를 속삭였다.
“정 신경 쓰인다면, 크리스마스 이후 시간 내 줄 수 있냥?”
명백한 데이트 신청이었다. 누가 보아도, 아무리 연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상황이라면 체냐의 말을 ‘연말 데이트 신청이로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셜린은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상대의 관심을 확신하지 못하는 걸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 깜빡이던 그는 잠깐 망설인 그는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 주말이라면 가능해.”
“으응. 그럼, 연말에 보자구 셜린.”
전하고 싶은 걸 건네고 원하는 것을 얻어낸 체냐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나타날 때와 반대 순서로 사라져 버렸다.